[취재수첩] 주식담보대출 덫에 걸린 바이오 CEO

입력 2024-01-18 17:47   수정 2024-01-19 00:56

“주식담보대출을 받으려고 증권사, 저축은행까지 25곳을 돌았지만 다 거절당했습니다. 바이오 기업은 99%가 매출과 영업이익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데, 다른 업종과 동일한 잣대로 심사하니 당해낼 재간이 있나요.”

국내 분자 진단 기업 진시스템은 지난 17일 서유진 대표가 블록딜(시간 외 대량 매매)로 주식 40만 주를 팔았다고 공시했다. 알고 보니 기존 주식담보대출을 상환하기 위한 서 대표의 결단이었다.

상황은 이랬다. 서 대표는 6개월 전 주식담보대출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만기가 다가오자 증권사에 연장을 요청했다. 하지만 증권사는 ‘불가하다’는 통보를 보냈다. 증권사가 내건 조건은 “한 달 안에 대출금의 절반 이상을 상환하라”는 것. 서 대표는 다른 금융회사에서 대출받으려고 했지만 또 거절당했다. 결국 주식을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블록딜로 서 대표의 지분율은 20% 아래로 떨어졌다.

진시스템만의 일은 아니다. 신약 개발 기업 보로노이는 증권사로부터 일방적인 만기 연장 불가 통보를 받아 지난해부터 법률 대응을 진행 중이다. 인공지능(AI) 신약 개발 기업 신테카바이오는 주식담보대출을 거절당한 끝에 사모대출운용사와 환매조건부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해야 했다. 지난해 말부터 라덕연 사태, 영풍제지 사태 등을 겪은 금융사들이 리스크 관리를 ‘세게’ 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일부 증권사는 ‘위험자본 비율을 줄이라’는 금융지주사의 지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치의 역풍을 바이오 기업들이 고스란히 맞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불만이다. 임상시험, 연구개발(R&D) 등의 비용 지출로 재무제표가 좋지 않은 바이오 기업은 금융권에서 위험 대상으로 분류됐다. 임상시험 하나가 2년 넘게 걸리기도 하다 보니 당연히 수익다운 수익이 나오기까진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이런 바이오 업종의 특수성이 대출 심사 등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결국 담보 물건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고, 기업 재무제표가 기반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도 “최근 상황이 바이오 기업들에 불리하다고 느낄 순 있다”고 했다.

이번 진시스템 공시를 보고 바이오업계에선 ‘그나마 대주주 지분 매각이라도 하는 게 다행’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고리대금업자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선 바이오주 반대매매 러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식담보대출을 받은 바이오 기업 대다수가 적자를 내고 있어서다. 이렇게 되면 미래 성장동력이라는 바이오산업은 위축되고, 일반 투자자들은 손실이 불가피해질 것이다. 일정 기간 실패와 적자가 필연적인 산업 특성을 감안한 정책 없이는 K바이오의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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